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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쯤,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저녁 약속을 마치고 나오다 우연히 정부경제관료를 만난 적이 있다. 과거 기자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이였다. 그 역시 저녁 약속을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지만 반주를 한 잔 한 탓인지 주변을 살피지 않고(?) 과거정권 사람을 반갑게 맞으며 한 잔 하자고 했다. 나 역시 반가워서 호프집에 마주앉아 생맥주로 회포를 풀었다. 맥주가 서너 순배 돌아가자 이런저런 과거이야기부터 요즘 하는 일까지 미주알고주알 쏟아졌다.

 

  그러던 중에 그이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이른바 '찌라시'(사설정보지)에 실린 얘기라며 말했다. 내용인 즉 이랬다. 모 대형금융기관에서 동유렵 국가에 1조원 가까운 은행 투자를 했는데 그게 실패로 끝났고, 그 때 나간 돈의 일부가 런던 금융가로 유입되었는데, 그 돈의 주인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여권 실세라는 소문이 런던 금융가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야말로 찌라시같은 이야기구먼. 내가 청와대 있을 때도 숱하게 찌라시 이야기를 들었지만, 90%는 찌라시꾼들의 자작곡이야. 내 이야기를 써놓은 찌라시도 봤어. 헛웃음 밖에 안나왔어. 예를 들면 정부인사를 두고, 내가 광주고등학교 출신이라 누구를 밀고, 어떤 찌라시는 내가 고려대출신이라 누구를 민다고 나와 있는데, 이미 인사위원회에서 엉뚱한 사람이 추천되었던 적이 있어. 찌라시에 빠지면 안돼. 중독돼."

  그가 말했다.

"글쎄,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즘 찌라시는 90% 이상 맞아요. 찌라시에 뜬 정보가 틀린게 드물어요.

  내가 말했다.

"그정도 대형사건이면 야당이나 당신이 모를리 없잖아. 그리고 벌써 신문이나 인터넷에 떳겠지."

  그가 말했다.

"하여튼 그렇다는 거지, 저희들이 뭘 알겠어요."

 

  그와 헤어져 귀가하는 택시에서 내내 그의 '찌라시' 내용이 머리를 맴돌았다. 찌라시를 전한 것인지, 자기정보를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믿기 어려운 엉성한 구조였다. 이른바 <쌍팔년도식> 구조였다. 1조원, 비자금, 실세, 런던금융가 등등.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무수한 유언비어들을 접한 적이 있다. 특히 대통령 내외분과 관련된 유언비어들은 차마 옮기기도 역겨운 천박한 조작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권양숙여사가 골초여서 하루에 담배를 2갑이상 피운다', '권여사가 알콜 중독이다.', '권여사가 골프가 싱글이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골프 나간다.', '권여사 소유의 골프장이 있다더라' 등등.

 

  그래서 한번은 관계비서관을 통해 그 진원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라고 시킨 적이 있었다. 얼마 뒤 비서관이 보고했다. "그런 악성유비가 퍼지는 곳은 주로 강남의 미용실이나 여성사우나로 파악됩니다. 누가 만드는지는 잡히지 않고 있으나, 극우세력이나 반대정파에서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내외분을 지근거리에서 하루종일 대하는 비서실장으로선 기상천외한 내용들이 유언비어로 난비하는 것을 참여정부와 노대통령에 대한 반대세력의 끈질긴 흠집내기 흑색선전 전략이라고 치부하고 헛웃음으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 내외분도 알면서 웃어넘기는 것을 비서실장인들 어쩌겠는가.

 

  그런데 하루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집사람이 밖에서 강남사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 씩씩거렸다. 왜냐고 물었더니 친구들 가운데 한 두 명이 시중의 유언비어를 들썩이며 사실이냐고 묻더라는 것.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권여사가 골초여서 골프칠 때마다 수행비서가 재떨이를 들고 다닌다는데 사실이냐'고 묻더라는 것. 집사람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권여사께서 대통령님이 담배를 끊지않아 짜증내시는 것도 보았다."고 얘기해도 곧이 들으려 않더라는 것. 집사람이 화가나서 도대체 그런 얘기를 누구한테 들었냐고 따지자 '학부형 모임'이라고 하더라는 것.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친구들이 그 수준 밖에 안돼! 당장 끊어버려." 애꿎은 집사람에게 화풀이가 되고 말았다.

 

  요즘 한동안 잊고 지냈던 <쌍팔년도식> 흑색전략이 되살아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시절 했다는 동영상을 보고 국회청문회를 보니 그렇다. 그는 청문회에서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럼에도 유언비어를 낳게하는 교묘한 답변만 되풀이 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러고도 경찰청장에 임명되었다.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 가관이다. "공정한 사회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자진사퇴했지만 나머지 분들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충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치적 억압에 맞서 죽음으로 대의를 지킨 전직 대통령을 패륜적으로 욕보인 경찰청장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니, 도대체 청와대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르키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근거를 대지 못하는 조씨의 해괴한 발언이 '공정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청와대가 공인하겠다는 것인가.

 

  청와대와 이 정권이 최소한의 '공정한 사회'를 향해 가겠다면 최소한의 절차와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첫째, 조현오씨는 이미 서거한 전직국가원수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어 있다. 그 결과는 정권이 마음먹으면 단 하루면 나올 수 있다. 조씨가 공적으로 한 말이 과연 사실인지 유언비어였는지 여부는 너무나 쉽게 가려질 수 있다. 너무 간단하다. 대통령이 검찰에 조씨 발언내용의 진위를 시급히 가리도록 특별지시를 하면 되었다. 그 결과에 따라 임명여부를 정해도 늦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정권의 양심에 물어볼 수 밖에 없다. 정권의 정치적 살인으로 서거한 전직국가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절차적, 인간적 예의도 없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둘째, 조씨의 3월발언을 청와대는 정말 모르고 있다가 보도이후에야 알았을까. 동영상까지 나도는 13만 경찰의 제2인자의 중대발언을 청와대가 당시에 보고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 보고가 올라오지 못한다는 것은 청와대 구조상 이해할 수 없다. 청와대 근무해본 사람이면 청와대가 그런 어설픈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보고도 못받았다면 청와대시스템이 구멍나 더욱 큰 일이고, 이미 알고도 추천했다면 더더욱 큰 의혹이 들 수 밖에 없다. 정권차원의 훈장을 준 셈이다. 청와대의 임명강행과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의 짝짝꿍을 보면서 <쌍팔년도식> 흑색음모의 냄새가 번진다. 무엇을 노린 음모일까. 친노가 두려워 자파세력의 단합인가.

 

  공정한 사회의출발은 경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민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경찰총수가 공정한 사회의 일선 집행총수라면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신화로만 존재할 수 있을까. (프로크라테스는 그리스신화 속의 산도둑. 손님을 끌어들여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자르고 짧으면 늘렸다는 이야기)

 

  조씨는 국회청문회에서 그의 동영상 발언을 전체 문맥에서 이해해 달라는 식이었다. 아무리 문맥을 뒤집어 봐도 그곳에는 서거한 전직대통령을 언급할 아무런 요소도 이유도 없었다. 무엇인가를 노린 작심한 언급이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들어보면 분명한 문맥이 잡히는 것이 있다.

 

  <미국식>에 대한 그의 잘못된 집착과 경도이다. 미국식으로 이해하면 그는 서거한 전직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유포로 당장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미국식으로 이해하면 그는 서거한 전직국가원수에게 명예훼손이라는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뿌린 현행범이다. 미국식으로 이해하면 그는 어떤 변명과 요설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다. 국회라는 국민대표기관 앞에서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공직자가 어느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인가. 이발소인가, 사우나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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